지난 주말, 이태원을 찬찬히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서부터 이슬람 사원, 재개발 진행 구역까지 몇 시간에 걸쳐 천천히 걸으며 동네를 살펴보았습니다. 제게 이태원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가는 동네였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곳을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가게 몇 군데 가는 것으로는 어떤 동네를 잘 알 수 없다는 걸 이번에 또 느꼈습니다. 이태원에 사는 분이 이 걷기 시간을 이끌어 주셨는데 제가 알지 못했던 장소와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이태원 일대에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걷다 보니 빈집과 가게가 아주 많았습니다. 골목 곳곳에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가구와 쓰레기가 쌓여있었고, 사람이 찾지 않는 집의 모과나무에는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덩굴 식물로 뒤덮인 현관문들이 많았고, 어느 골목은 사람들이 지나가기 어려울 만큼 풀이 높게 자라 있었습니다. 어느 길에서는 사람보다 고양이를 더 많이 만났습니다. 서울 한가운데에 있는 동네인데 사람은 없고 식물과 고양이가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어 낯설었습니다. 몇 년 뒤엔 이번에 본 집도, 나무도, 고양이도 이곳에 남아있지 않겠지요. 무엇을 기억하고 돌아가면 좋을지를 생각하며 걸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미래'라는 단어에는 '낡고 오래된 것을 지우고 그 자리를 말끔한 새것들로 채운다'라는 의미만이 뒤따르게 된 것 같아요. '미래'의 다른 의미, 다른 사용법을 계속 생각해 보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