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제가 평소 정말 좋아하던 분과 점심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어요. 오며가며 짧게 인사를 나눈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약속을 잡고 만난 것은 처음이었죠. 그분은 자리를 비우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슬로워커이자, 오렌지레터 편집자이자, 마케터이자, 성노들(저의 본명)이신 분'을 만나러 간다고 말을 전하고 나오셨다는 거예요. 저의 몇 가지 정체성을 단번에 정리해주신 건데요. 생각해보니 이것 외에도 저는 요가인이자 여행가, 작가, 맛집러 등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가끔은 서로 다른 저의 정체성이 충돌할 때도 있고 각자 다른 기술과 태도가 필요한 때도 있어 혼란스럽기도 해요.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면 괜히 속상하고 마음도 가라앉고요. 그럴 때가 오면 개그우먼 박나래 씨의 영상을 보고 툴툴 털어버리려고 해요. 마케터 누들이 실패하더라도, 나에겐 요가인 누들이 있다(!) 하면서요. 그렇게 같은 듯 다른 여러 개의 자아를, 사소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나의 능력을 알아채고 북돋아 주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 풍족한 삶을 살고 있구나, 싶어진다니까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머리 아픈 생각은 잠시 넣어두고 다양한 내 모습을 만끽해보세요. 그것대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