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예술영화 상영관에서 자원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일주일에 하루, 상영 시간에 맞춰 관객 입장을 안내하면 되었는데요. 직원 한 두 분과만 소통하면 되는 일이어서 다른 분들과는 접점이 거의 없었어요. 저도 그분들도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업무 영역도 겹치지 않고, 저의 활동 시간도 짧았으니까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제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내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자원활동가 중 하나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로 받아들여지는 기분이었어요. 얼마 전 본 애니메이션에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하더라고요.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바쁜 회사에 모든 직원의 이름을 외워 부르는 직원이 나타난 뒤로 거대한 변화가 생긴다는 내용이었거든요. 회사에서 부품처럼 소비되던 사람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이후로 관계의 가능성을, 그 가능성 안에서 결국엔 자기 자신을 발견하더라고요.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처럼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을 정성껏, 세심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것들을 바꿔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도 그런 성숙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네요. 저의 이름을 불러주던 평범하고 멋진 어른들처럼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