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왔어요.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의 가까운 곳이었는데도 여행자의 눈엔 뭐든 다 새로워 보이더라고요. 입국심사 때 공항의 분위기만 봐도 그랬어요. 허술한 외국어로 적힌 종이 안내문과 세련과는 거리가 먼 오래된 기계들, 북적이는 여행객들 사이 어딘가 느긋함이 느껴지는 직원들까지. 이곳의 시간은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카페나 음식점에 들어서면 머리가 희끗한 채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로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서빙하는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제멋대로 가게의 유구한 역사를 짐작해 보기도 했어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계산기, 카드기 같은 기계들이 이곳은 여기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3박4일이라는 짧은 여행 동안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뒤로도 쭉, 나의 속도나 역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어요. 여행지에서 친구들과 전 무심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려다 말고 현지인들 속도에 맞춰 그대로 멈춰 서 있곤 했는데요. 그것만으로도 해방감 비슷한 게 느껴지더라고요. 오늘 출근길엔 긴 에스컬레이터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며, '진짜 나에게 맞는 속도는 뭐지?' 묻게 됐어요. 세상의 채근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알맞은 속도로 시간을 켜켜이 쌓아나가고 싶어요. 그것만으로 멋진 역사가 될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