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계획형 인간에 가까워요. 멀리 여행을 가면 방문할 곳에 주차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미리 알아보는 편이에요. 계획대로 차를 세우면 안도하고, 예상치 못한 인파로 자리를 찾지 못하면 당황하고 정신을 못 차리기도 했어요. 변수를 새로움이나 즐거움보다 피로로 느끼는데요. 일 년 전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고 육아도 시작하며 수시로 변화를 겪고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세우고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저에게 스타트업 첫 몇 달은 적응하기 어려운 시기였어요. 상황에 맞춰 2주마다 조금씩 바뀌는 프로젝트 방향을 따라가기에 바빴고, 집에서는 더 예상치 못한 일로 가득한 육아와 마주했어요. 정신이 없었어요. 낮과 밤을 잇는 정신 없음으로 힘들 때 친구가 말을 건넸어요. "일도 육아도 살아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라는 조언대로 산 지 서너 달이 조금 지났어요. 저의 정신 없음은 나아졌을까요? 아니요. 여전히 정신이 없네요. 그래도 변화하는 상황들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여요. 의외의 순간이 주는 재미, 어설프더라도 새로운 상황에 대처했을 때 느끼는 소소한 성취감 같은 것들이 있어요. 오늘도 변화와는 서먹서먹하지만, 조금씩 친해지는 하루를 보내보려고 해요. 계속 정신은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