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없는 건 없어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지방 소도시의 작은 시골 마을이에요. 성인이 되고부터는 쭉 서울에서 살았는데, 그래서인지 이젠 고향에 갈 때면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서울 생활이 익숙해진 제가 '도시 사람' 같은 면모를 보일 때마다 엄마는 못마땅한 눈치예요. 언젠가는 밭에 자란 잡초를 보고 "저것도 이름이 있어?" 물었더니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황당해하는 얼굴로 "우리 눈에야 잡초지만 다 제 이름이 있지. 이름 없는 건 없어"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곤충을 보고 만지는 게 꽤 자연스러웠지만, 흙과 멀어진 지금은 어쩌다 마주친 벌레 한 마리에도 온갖 수선을 떨곤 해요. 며칠 전엔 배송받은 제철 채소 꾸러미를 살펴보다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하고 아찔해졌어요. 안온했던 집의 평화가 달팽이 때문에 깨져버린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사실 여기서 굳이 황당한 쪽을 따지자면 그건 제가 아니라 달팽이겠더라고요. 밭에서 풀을 먹다 이름 모를 인간의 집까지 오게 된 달팽이의 사연은 얼마나 기구한가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용기가 생겨서 달팽이가 있는 신선초를 들어 올려 옥상에 있는 텃밭에 내려뒀어요. 더듬이를 움직이며 기어가는 모습이 예상외로 재빠르고 귀엽기까지 하더라고요(그곳에서 모쪼록 잘 지내야 할 텐데 말이죠). '이름 없는 건 없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잘 모른 채 지나쳤을 다양한 존재들이 궁금해져요. 최근엔 꽃과 나무, 새와 곤충의 이름을 많이 기억하려고 해요.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잘 알게 될수록 세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거라고 기대하면서요.
- 도브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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